세계에 대한 기억의 수집 - 지구의 돌부터 무중력 상태의 이미지 파일까지
Yoonjung Choi, December 16, 2018


돌은 어디에나 존재하는 흔한 물질이다. 그런데 모든 돌이 같은 가치를 지니는 것은 아니다. 어떤 돌들은 수집되어 보관되고 때로는 전시된다. 여기 이 사진에서처럼.​

사진 속 캐비넷에는 어디서부턴가 주워왔을 돌들이 전시되어있다. 여기에는 그 어떤 법칙도 존재하지 않는 듯하다. 다양한 색, 모양, 크기를 한 돌들은 때로는 위아래 겹쳐지기까지 하면서 무심하게 놓여져있다. ​

 Naturalienschrank in der Wunderkammer der Franckeschen Stiftung zu Halle

캐비넷의 수집 대상은 돌뿐만이 아니다.

 Naturalienschrank in der Wunderkammer der Franckeschen Stiftung zu Halle
Historische Aufnahme der Kunst- und Naturalienkammer von 1910; Franckeschen Stiftung zu Halle

산호초, 말린 나무가지와 씨앗, 박제된 거북이, 포르말린 용액으로 보존되는 동물들까지 이 캐비넷의 수집대상은 광범위하다. 이 캐비넷 안에는 이상하고 특별한 것들은 모두 들어갈 수 있다. 이상하고 특별하다는 것의 정의는 쉽지 않다. 무언가 눈에 익숙지 않은 것들 - 이국적인 것들, 낯선 것들, 드믄 것들, 기괴한 것들 그리고 유별히 아름다운 것들까지도 수집과 보관의 대상이 된다. 이들을 담는 캐비넷의 이름은 예술과 경이의 방(Kunst- und Wunderkammer)이다. 그리고 이 진귀한 것을 수집하려는 행위 뒤에는 세상의 모든 것을 파악하려는 욕망이 있다. 이 때 캐비넷은 온갖 기이한 것들로 이루어진 하나의 작은 세계이다.

          분더카머라는 용어가 개념화된 것은 16세기 중반 독일에서부터이지만 캐비넷에 사물을 수집하고 보관하는 전통은 이미 오래 전부터 시작되었다. 캐비넷이 오늘날 자연사박물관을 연상시키는 것처럼 수집과 전시의 역사는 박물관의 전사에서 시작되었다. 기원전 4세기 그리스부터 인도 서부까지 전역을 장악한 마케도니아의 왕 알렉산드로스는 그의 이름을 딴 도시 70여개를 전역에 세웠고, 그 중 물리적 조건으로 가장 번성했던 곳이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이다. 거대한 영토를 획득한 알렉산드로스는 각 지역의 원주민과 그들의 문화를 억압하는 대신 토착 그대로의 것을 존중하는 정책을 펼쳤다. 광할한 영토에서 얻은 자료와 지식들이 알렉산드리아에 모였고, 이를 연구하고 관리할 천문대, 동물원, 식물원, 도서관 등이 뮤세이온(Museion), 즉 학문과 예술의 신인 뮤즈들의 전당이라는 이름 하에 만들어졌다. 이것이 오늘날 박물관(Musuem)의 모태이다.

          뮤세이온 이후 유럽에서는 지속해서 수집과 보존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다만 이때의 수집은 학문적인 목적이기보다는 진귀한 것을 수집하려는 개인의 욕망이었다. 예를 들어 고대 로마의 전기 작가 수에토니우스는 로마의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그의 집을 “조각상과 회화뿐 아니라 오래됐거나 진기한 사물들, 이를테면 카프리 섬에서 발견된 기괴한 야수들의 거대한 유해로 장식했다”고 기록했다. 지배자로서 세계를 정복하려는 야망의 그의 집에 축소된 것이다. 

          지적 욕구를 바탕으로 한 수집욕은 후기 르네상스 무렵부터 바로크 시기에 가장 강하게 나타났다. 상업으로 힘을 키운 신흥귀족들은 미지의 세계를 정복하려는 욕구를 수집으로 일부 해소했다. 이탈리아 메디치가의 스투디올로(studiolo)가 대표적인 컬렉션 사례이고, 이 유행이 독일로 흘러가 16세기 중반 처음으로  예술과 경이의 방(Kunst- und Wunderkammer)이라는 용어가 만들어졌고, 영국에서는 ‘진품실’(cabinet of curiosities), 원더체임버(wonder chamber) 등으로 불렀다.​

          눈에 띄는 흥미로운 점은 예술과 경이의 방(Kunst- und Wunderkammer)이라는 이름에서 볼 수 있듯이 이 캐비넷 안에서 예술작품과 돌과 같은 자연물들은 동등한 위치를 가졌다는 점이다. 인간의 의지가 개입되지 않은 자연물과 인간의 창의성의 결과물이라 여겨지는 인공물이 차이 없이 함께 진열되는게 오늘날 우리에게는 낯설게 느껴진다. 르네상스는 분명 원근법 등 자신만의 체계를 갖추며 미술이 예술로서의 존재가치를 인정받기 시작한 시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다시 미술이 오늘날의 기준으로서는 생물학, 문화학 등의 학문 대상과 같은 영역에 놓이게 되었던걸까. 그 이유는 쿤스트카머 혹은 분더카머가 지식을 향한 욕망에서 시작했기 때문이다. 아래 도판에서 보이듯 수집의 대상이 된 회화는 주로 정물화나 풍경화다. 내가 가보지 못한 곳, 그곳에서 피어나는 꽃과 영글어질 열매를 내 소유의 것으로 만들거나 혹은 내가 가보았고 지금 내 앞에 싱그럽게 놓여있지만 곧 썩어 없어질 것들을 영원한 것으로 박제시켜 기억의 대상으로 만드는 것이다.

Domenico Remps, Cabinet of Curiosities, 1690s

            분더/쿤스트 카머의 열풍은 계몽주의와 함께 끝나게 된다. 왕족 혹은 귀족 계급의 몰락과 함께 그들의 화려한 컬렉션도 끝이 났다. 루브르 뮤지엄의 사례처럼 개인 컬렉션은 공공 박물관으로 대중들에게 전시되게 된다. 개인의 지식을 과시하던 수단인 캐비넷은 이제 공공을 향해 문을 열었다. 또한 박물관 체계 확립과 함께 자연 수집물과 예술이라는 인공물은 더 이상 한 공간 안에 있지 않게 되었다. 이 시기까지만 해도 작품이 전시되는 방식은 쿤스트/분더카머와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캐비넷 속 대상들처럼 특정한 분류체계없이 뒤섞여 있었다. 그러나 모더니즘으로 들어서며 예술은 자신만의 계보학을 만들어가며 다른 작품들과 거리를 두며 자신만의 존재를 부각시키기 시작했다.  그렇게 화이트큐브에 이르러서 예술작품은 다시는 일상 사물과 동일한 수집의 대상이 될 수 없을 것만 같은 권위를 획득하기에 이르렀다. 

Pietro Antonio Martini., Le Salon de 1787 au Louvre,  1787
The first exhibition of the Museum of Modern Art, November 7, 1929

다시는 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수집이 최근미술에서 다시 보이고 있다. 과거처럼 학문과 예술의 신인 뮤즈들의 전당이라는 뮤제움에서가 아니라 이번에는 오롯이 미술의 영역 안에서이다. 할 포스터(Hal Foster)는 이미 2004년 미술 작품에서 나타나는 아카이빙 방법론을 ‚아카이브 충동(Archival Impulse)’이라는 표현으로 정리한 바 있다.¹ 아카이빙 방법론은 전시 형식으로도 활발히 나타나고 있다. 큐레이터  오쿠이 엔위저(Okwui Enwezor)는 2008년에는 데리다의 책 <아카이브 병: 프로이트의 흔적>의 제목을 차용해 <아카이브 병: 현대 미술에서의 도큐멘트 사용 Archive Fever: Uses of the Document in Contemporary Art>라는 전시를 개최했고 이후 2015년 총감독을 맡은 베니스 비엔날레에서는 ‚기억의 정치학’을 주요 모티브로 행사를 기획했다. 이와 같은 대표적 사례 말고도 오늘날 많은 전시에서 아카이브 스타일의 작업을 볼 수 있다. 전시 주제와 관련있는 오브제나 문서를 진열하지 않은 전시는 보기 드물 정도이다.

            동시대미술에서 보이는 수집의 형태는 과거 쿤스트/분더 카머와 비슷한 구석이 꽤 있다. 먼저 형태적으로 수집과 전시에는 특정한 체계가 없다. 본디 아카이빙은 대상을 통제하려는 기록의 수단이다. 그러나 캐비넷 속 돌처럼 오늘날 전시장에서 보이는 아카이빙 대상들은 우연히 맞딱트린 것을 늘여놓은 모양새로 전시되어 있다. 다음으로 돌처럼 사실은 흔하고 사소한 것들이지만 기이하다는 혹은 가치있다는 가치 평가 하에 수집의 대상이 되었다. 발에 채이는게 돌인 것처럼 아카이빙된 이미지들은 실은 오늘날 어디서든 구할 수 있는 수많은 이미지 중 하나이다. 마지막으로 둘 모두 기억에 목적을 두고 있다. 그러나 그 기억의 의도에는 차이가 있다. 캐비넷 속 수집은 지식을 사적인 것으로 소유하려는 욕망의 발현이었다. 반면 동시대미술에서 보이는 아카이빙은 공동의 기억을 재전유하는데 목적이 있다. 둘 모두 세계를 어떻게 기억할 것이냐는 각자의 관점 하에 캐비넷 혹은 전시라는 하나의 큐브(cube) 속에 저마다의 세계를 세계를 구현한다. 

          먼저 오쿠이 엔위저는 ‚기억의 정치학’이라는 용어를 개념화한다. 2008년 전시에서 대상을 통제하려는 목적으로서의 통치수단인 아카이브를 가시화하며 이미지 아카이빙을 현대 미술의 주요 형식이자 매체로 강조하기 시작했다. 이후 총감독을 맡은 2015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는 이 주제를 발전시켰다. 여기서 그는 제국주의 식민정책의 아카이브로서 사진과 영상 기록을 이용한 작품들을 선보이며 유럽의 과거 식민주의 아카이빙을 재전유하고자 했다. 그에게 아카이빙 형식은 아카이빙이 가진 데올로기적 기능을 폭로하면서 동시에 아카이빙이 조작해낸 집단적 기억에 대항해 대안 서사를 만드는 가능성을 가진 예술적 실천이다.

Christian Boltanski’s Reserve Detective, 1987, included in the “Archive Fever” in 2008

          아카이빙이 ‚대안적 기억’을 만든다는 점에서 오쿠이 엔위저와 할 포스터의 관점은 닮아있지만 이에 도달하는 과정에는 차이가 있다. 우선 할 포스터는 아카이빙이 지닌 사적인 편집증적 성격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그에 따르면 아카이빙은 사적인 영역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공적인 기능으로 뻗어져나간다. 이미 존재하는 상징적 질서들을 흐트리고자 하고, 또 한편으로는 세계가 총체적인 질서들로 이루어졌다 주장은 모더니즘의 환상이었음을 지적한다. 오늘날 미술에서 보이는 아카이빙은 아키이빙의 근대적 의미와 달리 총체성의 의도가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아무 논리가 없는 것이 아니다. 혼돈스러워 보이는 파편들을 통해 새로운 질서를 제안하는 것이다. 

 

연관성을 찾기 힘든 사소한 이미지들의 수집이 미술의 영역에서 최근에 이르러서야 나타난 것은 아니다. 오늘날 많은 이미지 아카이빙은 약 백년 전 활동한 미술사학자 아비 바르부르크(Aby Warburg, 1866~1929)에게 기원을 두고 있다. 그의 가장 알려진 (그러나 오늘날 기준에서는 어디서 흔히 보았을 법한) 작업은 그가 죽기 전 여러 해 동안 메달렸지만 미완으로 끝난 므네모시네 아틀라스(Mnemosyne Atlas)이다. 

 어떤 공통점이 스치듯 보이지만, 무엇을 의도했는지 알 수 없는 이미지의 나열들.
세계를 기억하려는 절박한 시도

          할 포스터가 동시대미술에서 보이는 아카이브 아트가 편집증적 충동에서 비롯되었다 표현한 것보다 더 절박하게 바르부르크는 이미지 아카이빙에 매달렸다. 쿤스트/분더 카머의 형식처럼 그는 패널에 자신만의 질서로 조합된 이미지를 수집했다. 조현병 환자로 요양병원에 입원하여 강제 아편 치료까지 받게 되었던 아비 바르부르크. 그에게 스스로를 그리고 전후 파괴된 유럽 사회를 구원하는 방법이 바로 이 이미지들의 성좌를 만드는 일이었다. 언어로 이루어진 말보다 이미지로 현시된 외상적 반응을 수집화하고 목록화하는 일은 이미지 속에 숨어있는 세계에 근원에 다가가는 과정이었다. 공포스러운 세상 속 인간은 이 방법을 통해서만 자신만의 고유한 질서로 세계를 마주할 수 있었다. 

          바르부르크가 이미지 수집을 통해 세계를 새로이 기억하려 했던 시도는 발터 벤야민의 역사관과도 어딘가 맞아있다. 벤야민은 그의 많은 저서들, 특히 <역사 개념에 대하여>에서 연대기적 시간관을 비판하고 과거와 현재가 이미지의 상관관계로 공존하는 시간관을 주장했다. 현재의 의도가 과거를 소환할 때, 과거는 ‚섬광 같은 이미지’로 현재와 마주한다. 벤야민의 역사 서술처럼 바르부르크가 이미지로 재구성한 역사도 무수한 섬광의 조각일뿐이다. 무수하게 쪼개진 기억의 단편들은 거대 서사를 통해 기록된 역사에서 벗어나 새로운 역사를 구성할 수 있게 한다. 이어진 단편들의 연관관계를 파악할 수는 없지만 이미지 뒤에 숨겨진 무의식의 근원은 공동의 기억을 이끌어내어 역사의 재구성이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공동체적일 수 있는 가능성을 갖고 있다.

 

아비 바르부르크의 실천은 오늘날 많은 전시 속에서 보인다. 철학자이자 미술이론가 조르주 디디 위베르만은 바르부르크를 기리며 <므네모시네 아틀라스>라는 전시를 개최했었다. 기존 컬렉션을 재맥락화려는 시도로 2018년  Hamburger Bahnhof에서 개최된 <Hello World. Revising a Collection>에서도 소장 작품과 이미지들이라는 점들을 이어 과거 소장 작품을 새롭게 읽어낼 수 있는 선들을 만들어냈다.

 Keith Haring, Untitled, 1987 and following image archive included in
the „Hello World. Revising a Collection“ at Hamburger Bahnhof in 2018

          이미지들의 집합이 오늘날 특히나 빛을 발하는  공간은 인터넷이다. 2000년대 중반부터 예술가들이 파운드 이미지, 비디오, GIF 등을 수집, 수정 및 공유하는 사이트들이 눈에 띠기 시작했다. ‚서프 클럽(Surf Clubs)’이라 불리는 이 공간에서 밀려오는 하이퍼링크의 물결을 넘나드는 서퍼들은 무한한 이미지들을 가려내는 취향과 능력을 나누었다. 시간이 흘러 마이스페이스 등으로 대표되는 웹의 시대는 가고 인스타그램이나 트위터 등 이미지를 공유할 수 있는 플랫폼이 인기를 얻으면서 문을 닫는 서프 클럽들이 늘어나고는 있지만,² 서프 클럽은 파운드 이미지가 커뮤니케이션의 기반이 되는 2010년대 텀블러의 인기를 이미 예시하고 있는 것이었다.³ 서프 클럽에서 볼 수 있는 디지털 이미지의 수집은 오늘날 많은 작업에서도 나타난다. 클립들로 짜집기된 비디오 작업에서 언젠가 한번쯤을 보았던 이미지가 눈앞을 스쳐지나가는 것처럼.

Nasty Nets (Screenshot), 2007, rhizome.com

돌이라는 가장 물질적인 물체부터 시작해서 가상세계를 떠도는 이미지들까지 수집의 환경은 바뀌었다. 한 가지 변하지 않는 것은 수집의 근저에 있는 세상에 대한 기억을 포착하려는 욕망이다. 디지털 세계에서 우리는 그 욕망이 실현불가능한 것임을 안다. 그렇기에 물리적으로 잡힐 수 없는 이미지 사이를 유희하듯 넘나들 뿐이다. 그러나 이 한계는 역으로 다른 가능성을 제시한다. 시공간을 넘나드는 사차원 좌표는 벤야민이 말한 이미지의 성좌를 잇기에 그 어떤 곳보다 적합한 곳이다. 이미지는 돌로 이루어진 지구를 떠나서 무중력의 공간을 표류하고 있다. 그 어느때보다도 이미지를 쉽게 접할 수 있게 된 오늘날, 스쳐지나가는 흔적으로 남을 이미지는 끝없이 우리에게 밀려온다. 너무나 많기에 뇌리에 남지 못하는 이미지들은 고정된 역사를 갖고 있지 않는다. 대신 훗날 불현듯 떠올라 새로운 기억의 연결고리를 만들 가능태를 품고 있다. 

각주

[1]  Hal Foster, „An Archival Impulse", October, Vol. 110 (Autumn, 2004), pp. 3-22. 할 포스터의 글은 본글에서 주로 다루는 이미지 아카이빙 말고도 오브젝트 등 매체를 망라하는 아카이빙 방식의 작업을 다룬다. 

[2]  작가 겸 큐레이터 Paul Slocum가 제작한 서프 클럽 온라인 카탈로그에서 서프 클럽의 아카이빙을 볼 수 있다. http://rhizome.org/editorial/2016/mar/30/catalog-of-internet-artist-clubs/

[3] Ceci Moss, „Internet Explores,“ in Cornell and Halter, Mass Effect, 1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