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과 극장. 두 단어를 떠올리며
Jeonghun Lee, December 17, 2018
 
*위 글은 리서치 내용과 개인의 일상 및 경험을 토대로 재구성한 글입니다.
2017년 12월 중순의 어느 날. DDDD 멤버 한 명의 집에서 조촐한 송년회를 가졌다. 한바탕의 식사와 대화를 끝내고, 밤이 깊어지면서 분위기가 천천히 그리고 부드럽게 가라앉았다. 그 속에서 우리는 앞으로 무엇을 쓸 것인지에 관해서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이를 생산할 것인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필자는 한동안 DDDD는 글을 쓰기 위해서 모였기 때문에, 시각예술과 관련한 텍스트를 생산하는 것이 가장 우선순위라는 고집을 지녔었다. 그러나 이는 우리가 글을 쓰는 것에 있어서 원동력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부담스러운 장애물로 존재한다는 것을 오래가지 않아 깨달았다. 이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이에 관해서 이야기했고, 반듯한 형식의 텍스트를 취하지 말고, 각자가 관심 있는 분야를 바탕으로 변주적 결과물을 만들자는 것에 모두가 동의했다. 이제 문제는 주제였다. 서로의 관심이 너무도 다르다는 것은 이미 다들 알고 있었고, 그렇다고 각자의 흥미와 연결되는 주제를 산발적으로 쓴다면 우리가 함께 무언가를 하는 사람들이라고 표방할 이유가 전혀 없다. 따라서 우리는 추상적이고 포괄적인 개념의 주제를 선정하고, 그 안에서 각자의 관심사와 엮은 어떠한 결과물을 생산하기로 했다. 그 결과물의 형태와 내용의 양과 질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당장에 중요한 부분은 아니다. 무엇이 되었든 간에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 자체가 중요했다.

 

우리는 가벼운 자세와 표정을 장착하고서 일종의 아무 말 대잔치를 시작했다. 생각나는 단어를 그냥 던져보기로 한 것이다. 생뚱맞은 단어들이 우르르 쏟아졌다. 그중에서 우리는 ‘돌(독일어로 Stein)’이라는 단어를 선정했다. 선정 이유는 딱히 없다. 그냥이다. 정말 문자 그대로 ‘그냥’. 아무튼, 그렇게 무언가를 시작했다.

 

작년 하반기에 필자는 시각예술 기반의 전시와 행사보다 공연 예술에 더욱 많은 관심과 애정을 가졌다. 베를린의 극장을 미친 듯이 돌아다니면서 인스타그램에 업로든 한 사진의 개수로 그 애정을 충분히 증명할 수 있다. 학업에는 쏟아보지 않았던 부지런함과 노력을 가능한 많은 극장을 가보고, 그곳에서 무대에 오르는 극/공연을 보기 위해서 쏟았다. 우리가 조촐하게 송년회를 가졌던, 그리고 ‘돌’이라는 주제를 집어 들었던 그 날도 역시나 공연 예술의 신비로운 기운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 때문인지 ‘돌’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 극장의 모습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고대의 극장 말이다. 거대한 돌로 만들어진 극장.

 

집으로 돌아와서 무엇을 어떻게 시작할지 몰라서 일단은 컴퓨터를 켰다. 그리고 무작정 구글(Google)에서 ‘고대 극장’을 검색해봤다. 백과사전, 기사, 논문, 관광지 소개, 관련 서적, 여행 블로그 그리고 이미지까지 방대한 자료가 눈앞에 나타났다. 이 모든 걸 하루 만에 전부 살펴보기에는 불가능할 것 같았다. 그래서 매일매일은 아니더라도 마감일 전까지 꾸준히 자료를 찾아보기로 했다.

 

아래는 검색의 결과를 날짜별로 정리한 것이다. 객관적 정보와 함께 엉터리인 사변을 늘어 놓아봤다. 한 달 남짓한 기간의 검색 결과와 현실 속 필자의 행적을 ‘돌과 극장. 두 단어를 떠올리며’라는 제목으로 포장해서 내놓아본다.

-2017년 12월 24일

오랑주 고대 극장’을 검색했다. 오랑주 고대극장(Théâtre antique d’Orange)은 프랑스 남부의 오랑주에 있는 극장이며,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어 있다고 한다. 로마 시대에 만들어졌고, 남아있는 로마 시대의 극장 중에서 보존상태가 제일 좋다고 한다. 로마 시대의 극장은 고대 그리스 극장의 특징을 대부분 도입했기에 그 모습이 상당 부분 닮았다. 미술사학의 관점에서도 로마의 미술은 고대 그리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이로 미루어 볼 때 두 시대의 극장이 비슷해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한 가지 다른 점은 그리스 극장은 자연 지물을 이용해서 만들어졌지만, 로마 극장은 그렇지 않았다는 점이다. 별도로 토대를 마련해서 그 위에 극장을 지었다 그러고 보니 극장의 시초는 고대 그리스인데, 얼떨결에 로마 시대의 극장을 먼저 클릭했다.

-2017년 12월 27일

전에 로마 시대의 오랑주 극장을 살펴봤던 글을 다시 읽고서 고대 그리스의 극장이 궁금해졌다.

다시 컴퓨터를 열어서 구글 창을 띄웠다.

 

 

(검색 중…)

고대 그리스의 최초 극장은 기원전 6세기경에 지어진 디오니소스 극장

(Θέατρο του Διονύσου, Theater of Dionysos)이다.

아크로폴리스의 남서쪽 비탈에 위치한 극장은

1765년 영국의 고고학자

리처드 챈들러(Richard Chandler, 1737-1810)에 의해서 발견됐다.

극장은 약 1만 4000명에서 7000명까지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

라고 한다. 극장은 크게 스케네(Skene)라고 불리는 무대,

테아트론(Theatron)이라고 불리는 관객석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반원형의 오케스트라(Orchestra)의

세 구조로 구성되어있다.

오늘날 흔히 볼 수 있는 무대의 형식인 프로시니엄(Proscenium) 즉, 액자형 혹은 사진틀형 무대보다 개방적인 느낌이다. 디오니소스의 극장을 비롯한 당대의 극장 건축은 기존에 있던 자연 지물을 이용하여 만들었다. 따라서 오늘날의 내부형 극장 형태가 아닌 외부형 극장이 될 수밖에 없었는데, 이러한 이유로 자연스레 개방적 성격을 가졌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나저나 무대 중앙에서 관객석 끝까지의 거리가 꽤 되는데, 소리가 균열하게 잘 전달된다고 한다. 누구나 다 같은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중심에 서서 바닥에 동전을 떨어뜨리면 객석 맨 뒤에서도 선명하게 그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한다. 직접 들어보기 위해서 그리스를 가기로 마음먹었다.

 

PS. 아, 그리고 오늘 문래예술공장에서 <Turn Leap: 극장을 측정하는 작가들>을 봤다. 오늘날의 극장, 미래의 극장 그리고 지난 시대의 극장 모습이 세 개의 층위로 축적되는 느낌이다.

 

 

-2017년 12월 28일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문득 어제 검색하던 디오니소스 극장이 떠올랐다. 어제는 극장에 너무 빠져있었다면, 오늘은 디오니소스에 관한 생각에 사로잡혔다. 디오니소스. 그 이름을 들으면 어릴 적에 보던 ‘고대 그리스 로마 신화’ 만화책에서 봤던 보라색 옷을 걸친 근육질의 잘생긴 남자가 먼저 떠오른다.

전에 봤던 영상이 생각낸다. 유튜브를 켜서 오랜만에 ‘너 때문에 흥이 다 깨져버렸으니까 책임져’영상을 봤다. 혼자서 지하철에서 실실 쪼개서(?) 옆 사람이 이상하게 쳐다봤다.

-2017년 12월 30일

그런데 왜 극장을 돌로 만들었을까. 다른 재료가 아닌 돌을 사용해야 하는 이유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돌과 극장은 어떤 지점에서 연결될 수 있는 것일까…

 

-2018년 1월 2일

디오니소스 극장의 경우 뒷자리는 나무로 만들었고, 앞자리는 돌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맨 앞줄에 있는 자리는 돌로 만들어진 등받이가 있는데, 이 자리는 디오니소스 신전의 사제 혹은 로마 시대에는 황제가 앉았던 자리였다. 

돌이라는 물체가 지니는 무게감과 단단함은 권력(Macht) 혹은 힘(Kraft)을 상징하며 극장에 존재했다. 오늘날의 극장에는 돌로 만들어진 자리를 볼 수 없지만, 그 자리를 ‘돈’이라고 불리는 자본이 대신 들어왔다. 무대가 잘 보이고 소리가 잘 들리는 좋은 자리는 비싸다. 극장에서는 가장 비싼 값의 자리를 필두로 일종의 자본주의적 계급이 존재한다. 돈을 많이 준 만큼 좋은 자리를 얻는 것이다. 그에 비해서 그리스 시대의 극장은 예술이 행해짐과 동시에 민주주의 시민을 길러내고, 교육하는 장소의 역할을 하는 공간이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오늘날의 극장은 과연 어떤 기능을 하는 공간인지 그리고 무엇을 위한 장소인지에 관한 고민에 빠졌다. 외부와 단절된 좁은 공간에서 예술과 유희가 자본에 의해서 계급 지어지는 현상과 장면을 반복해서 목격하는 곳일지도.

 

-2018년 1월 3일

그런데 사실 알고 보면 디오니소스는 탄생부터 올림포스(Olympos)에 오르기까지 꽤 극적인 삶을 살았다. 그는 제우스와 테베의 공주 세멜레의 아들로 태어났다. 제우스의 외도를 그냥 두고 보지 않았던 여신 헤라에 의해서 세멜레는 일종의 시험에 들었다. 헤라는 그녀의 어릴 적 유모로 변장해서 접근했는데, 제우스의 실제 모습을 보여달라고 부탁하도록 마음을 흔들었다. 세멜레는 제우스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부탁을 들어달라고 졸랐고, 제우스는 스틱스강에 걸고 맹세를 했다. 그녀의 부탁은 다름 아닌 본 모습을 보여달라는 것이었고, 제우스는 이를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그의 모습에서 뿜어져 나오는 광채에 세멜레는 새까맣게 타버렸고, 그 순간 제우스는 그녀의 몸속에서 아이를 꺼내어 자신의 허벅지에 넣고서 꿰맸다. 그리고 몇 달 후 그의 허벅지에서 나온 아이가 바로 디오니소스다. 그는 헤라의 눈을 피해서 여자아이처럼 길러졌다. 성인이 되면서 헤라의 눈총에서 벗어나는가 싶었지만, 그녀는 디오니소스에게 광기를 불어넣어 그 복수가 끝이 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그렇게 미치광이가 된 채로 이곳저곳을 떠돌게 된 디오니소스는 여신 레아의 은혜를 받아서 저주에서 풀려나고, 맨 마지막으로 올림포스(Olympos)에 오른다.

 

 

-2018년 1월 4일

디오니소스 극장에서는 ‘디오니시아’라고 불리는 희·비극 연극 경연 대회가 열렸다. 그리스의 3대 비극 시인으로 알려진 아이스킬로스(Aeschlus), 소포클레스(Sophocles) 그리고 에우리피데스(Euripides)의 비극 작품들이 무대에 오르곤 했다.

 

돌로 만들어진 극장에서 비극 작품이 흐르는 모습을 잠시 눈을 감고 상상해본다. 비극(Tragedy)의 끝자락에서 느껴지는 쓸쓸함과 감정의 찌꺼기들은 쉽게 부서지지 않고, 섣불리 흡수되지 않는 돌의 성질 덕분에 극장에서 발견되는 장애물의 방해 없이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음...위에 적은 말은 약간 억지스러운 것 같다. 그냥 상상 속의 느낌 정도로만 이해해야겠다.

 

-2018년 1월7일

엊그제 베를린에 도착했다. 장시간의 비행으로 몸이 많이 지쳐서 회복하는데 꽤 시간이 걸렸다.

 

한국에 가기 전에 1월과 2월에 Volksbühne, Schaubühne, Maxim Gorki Theater에서 볼 공연을 잔뜩 예매했다. 언급한 세 곳의 극장은 베를린에서 손꼽히는 극장들이다. 그 중에서도 Volksbühne는 프랑크 카스토프 관장의 후임자인 크리스 데르콘 예술 감독 선정을 두고서 최근까지도 연극계의 반대 목소리가 울려 퍼지던 곳이다. (현재는 크리스 데르콘 예술감독 체재 아래에서 기존과는 다른 새로운 모습을 그려나가는 중이다.)

그리고 필자가

 

‘돌’과 ‘극장’이라는 두 단어를 생각했을 때,

 

오늘날의 극장 중에서 가장 먼저 떠오른 장소이다.

-2018년 1월 17일

폭스뷰네(Volksbühne)에서 안무가 제롬 벨(Jérôme Bel)의 공연 <쇼는 계속 되어야 한다(The show must go on)>을 봤다.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 모를 정도로 너무 유쾌하게 봤다. 극의 대표적 요소 중 하나인 대사(dialogue)는 전통적인 언어 형식이 아닌 노래 가사(lyric)로 대체되었고, 이는 참조적 요소로서 기능하며 무대와 관객 사이를 떠돌아다녔다. 더불어 무대 위에서 드러난 움직임은 연출과 서사가 지휘하는 연극적 무브먼트(movement)와는 다르게 개방적이고 즉흥적이었으며 아주 직접적이었다. 이 두 가지 요소가 서로를 엮어내면서 생산된 비선형적 이야기는 유머(humor)를 만들어냈고, 이는 고대 그리스의 희·비극 혹은 샤우뷰네(Schaubühne)에서 봤던 일반적인 연극에서는 느낄 수 없는 또 다른 차원의 감동을 자아냈다.

-2018년 1월 18일

어제 봤던 제롬 벨의 공연을 다시금 떠올려본다. 넓은 극장에는 사람이 가득했다. 그전에 폭스뷰네에서 공연을 봤을 때를 생각해보면, 좀처럼 보기 힘든 풍경이었다. 그의 공연에 사람들은 매우 열광했다.

제롬 벨의 공연은 분명히 전통적인 연극은 아니다. 더욱이 극은 언어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 크리스 데르콘 예술 감독이 카스토프 관장의 후임으로 오는 것을 경계했던 독일의 연극계는 이렇듯 전통과 개성이 자본에 의해 만들어진 엔터테이먼트에 삼켜져 버리는 모습과 변화를 걱정한 것 같다.

카스토프 관장의 계약이 끝나지 않았을 때의 연극을 본 적이 있다. 그의 감독 아래에서 재해석 된 고전극은 크게 두 가지 특징이 있다.

하나는 재해석을 넘어서서 현실적이고 직설적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언어가 극을 꽉 움켜쥐고 지배한다는 점이 두 번째 특징이다.

그래서 연극은 몇 시간씩이고 쉴 틈 없이 진행된다.

제롬 벨의 공연을 보면서

그리고 그 움직임과 서사의 자유로움을 경험하면서

눈물을 흘렸지만,

정제된 상태로 몇 시간씩 지속하는 언어극과

머리가 지끈거리는 그 느낌이 문득 그리워졌다.

-2018년 1월 20일

폭스뷰네(Volksbühne)의 외관은 단단한 돌로 만들어져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철옹성의 느낌이다. 지난 분단의 역사 속에서 폭스뷰네는 동독(DDR)을 대표하는 극장으로서, 노동자를 위한 극장을 표방했고, 이곳에서 프롤레타리아 연극 장르가 탄생했다. 그 건물 역시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체제와 영향 아래에 지어졌다. 기념비적 성격과 동시에 체제의 위대함을 뿜어낸다. 돌이라는 물체는 시대를 막론하고 권력과 힘을 표출하기에 아주 적합하고 상징적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는다.

개인적인 이야기이지만,

폭스뷰네 건물 외관과 내부의 정제된 대리석 바닥을 볼 때마다

출처 모를 냉소와 우울함이 피부에 와닿곤 한다.

 

혹시 자연물로서 돌이 가진 차가움 때문인 걸까?

-2018년 1월 23일

길거리를 걷다가 문득 공사장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그 안에 놓인 수많은 돌을 한참 바라봤다. 돌은 드릴에 의해서 쪼개지고 또 쪼개졌다. 이를 가만히 보고 있자니 자본주의 물결의 범람 속에서 해체되기를 두려워하는 폭스뷰네의 언어극과 미학적 연극이 떠오른다. 이들이 안쓰러워진다. 눈앞에서 돌이 쪼개지는 걸 목격한 지금의 시점보다 훨씬 이전에 사실 폭스뷰네에서 무대에 오르던 언어극과 그 경향은 해체되기 시작했다.

 

 

-2018년 1월 24일

사실 외부의 거대한 충격을 견디기에 사실 돌이라는 물체는 너무 약하다. 지난 세기에 존재했던 권력과 힘 역시 영원한 것은 아니었다. 자연과 시간의 흐름 속에서 언젠가는 파편화될 수밖에 없는 그렇지만 언젠가는 그 파편이 외부 환경을 통해 다시금 하나의 덩어리로 뭉쳐지는 순간이 존재하는 것이 돌이다. 이처럼 동시대를 넘어서는 기점에서 조각조각 쪼개어지는 예술을 보면서, 외부의 충격으로 인해서 해체되는 폭스뷰네를 보면서 그리고 어디선가 다시금 뭉쳐지고 있을 새로운 예술 맥락과 담론을 기대하면서 글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