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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short articles and images about the Venice Biennale

베니스 비엔날레에 관한 9개의 짧은 글과 이미지

Eunji Park, July 26, 2017

1.

유럽을 중심으로 한 비엔날레와 미술행사가 올해 유독 집중되었다. 지난 4월, 아테네에서 시작한 카셀 도쿠멘타(Kassel documenta 14)를 선두로 현재 카셀에서의 도쿠멘타와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Münster Skluptur Projekte)가 한창 중이며, 뒤이어 리옹 비엔날레(Lyon Biennale)가 개막을 앞두고 있다. 올해로 57회를 맞는 베니스 비엔날레(La Biennale di Venezia) 또한 지난 5월부터 전시되고 있다. 그런데 정말 비엔날레의 수명이 다 한 것일까. 베니스 비엔날레가 오픈 한지 일주일도 채 안되어 예술감독 Christine Macel의 큐레이터쉽과 전시 주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1] 그녀는 ‘Viva, Arte, Viva’ 슬로건 아래, ‘예술가에 의한, 예술가를 위한 전시를 보여주는 것’이 이번 비엔날레의 목표라고 밝혔다. 그러나 거꾸로 되짚어 보면 예술가에 의하지 않은, 예술가를 위하지 않은 전시가 어디 있겠는가. ‘만세, 예술, 만세’ 라는 타이틀은 전시를 설명할만한 특별한 주제가 없거나 기획력의 부재처럼 보이기도 한다.

 

2.

기획력의 부재는 사실 어느 전시에서든 쉽게, 그리고 혹독하게 따라 붙는 평가다. 전시장 입구에서부터 빈틈없이 설치된 스펙타클한 작품들을 보고, 어쩌면 대규모의 국제전에서 큐레이터의 기획력을 논하는 건 무리 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더 이상 예술감독의 명성이나 혹은 다년간의 경력이 비엔날레의 긍정적인 결과를 보장하는 시대도 지났다. 그렇다면 우리는 한 해에도 수 차례 열리는 비엔날레에서 무엇을 기대하고 어떤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을까. 단 하나 분명한 사실은 수많은 작품들을 하루 온 종일 관람했음에도 전시장을 나왔을 때 기억에 남는 작품이 단 하나도 없다면, 그 비엔날레는 정말 최악이라는 것이다.

 

3.

예술감독은 이번 비엔날레에 대하여 ‘젊은 작가들 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이거나 혹은 고인이 된 작가들의 작품을 중심으로 인류학적이고 사회적인 세계의 이슈들을 재소환한다’고 보충했다.[2] 그러나 숫자로 본 비엔날레는 전혀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한 미술매체 는 비엔날레 참여작가의 성별, 인종, 연령, 출신국가 그리고 참여횟수 등을 통계 내었다.[3] 통계 결과에 따르면 남성 참여작가(65%)의 비율이 여성(35%)에 비해 두 배 가까이 많았고, 120명의 본 전시 참여 작가 중 31세 이하는 3명뿐이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아프리카 출신의 작가가 5%에 불과하다는 것. 비엔날레의 일환으로 마련된 Future Generation Art Prize에 선정된 21명의 작가 중 아프리카 출신베니스 비엔날레에 관한 9개의 짧은 글과 이미지는 Dineo Seshee Bopape와 Phoebe Boswell, 단 2명이었다. 올 해 처음으로 신설된 나이지리아 국가관은 전 회 비엔날레 예술감독이었던 나이지리아 출신 큐레이터 Okwui Enwezor 영향하에 가능했으리라. 숫자로 본 비엔날레는 (유럽과 북아메리카 출신의 중년 백인남성 예술가를 중심으로 한) 미술의 ‘만세, 예술, 만세’ 였다.

 

4.

숫자에 대한 이야기 한가지 더, 파빌리온의 개수에 관한 것이다.[4] 비엔날레의 본 전시는 9개의 파빌리온으로 구성되었다. 각각의 파빌리온들은 ‘예술가와 책들’, ‘기쁨과 분노’, ‘보통의’, ‘지구’, 전통’, ‘샤먼’, ‘디오니소스의’, ‘색채’, ‘시간성과 무한성’의 주제들을 갖는다. 9개의 단어들은 서로 상/하위 카테고리에 속해있기도 하고, 유사어 또는 반의어처럼 보이기도 한다. 과연 이 키워드들이 전시장에서 하나의 큰 맥락을 만들어 낼지, 혹은 9개의 독자적인 이야기를 전개해 나갈 것인지 궁금한 가운데 전시를 보기 시작했다.

 

5.

‘예술가와 책들’이라는 첫 번째 파빌리온은 책을 예술 오브제로 사용하는 다양한 작업에 관한 것이었다. 도록이나 리플렛처럼 전시를 부연설명하는 출판물을 제외하고, 전시장에서 책이란 작품의 재료이자 최종적인 형태가 되기도 한다. 또한 출판이 예술행위로써 기능하기도 한다. 예컨대, Franz West 의 Otoum(1996)이 정보의 전달과 기록이라는 고전적인 의미에서 책 매체를 활용한 것이었다면, 중국작가 Geng Jianyi는 단지 종이의 물성만을 활용하여 재염된 상태의 책 작업을 보여줬다. 책이 지닌 상징성과 권위를 소재로 작업하는 작가도 있었다. 잠비아 출신의 John Latham은 주로 서구 중심의 지식체계와 인식론을 뒷받침하는 서적들, 예컨대 영국영어사전이나 나치서적을 불에 태우는 퍼포먼스를 선보인 후, 그 재를 작품에 활용한다. 이번 전시에서 그는 석고와 캔버스를 책 오브제에 직접 결합시킨 설치작품을 선보였는데, 형태를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손상된 책들은 그 권위와 역사성이 탈취된 종이더미에 불과해 보였다.

 

6.

전시 주제와 큐레이터의 기획의도는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분명 중요한 부분이다. 그러나 끝내 전시가 ‘어떠하다’고 말할 때, 술어는 결국 기획자의 한 마디 말이나 글이 아닌 작품과 전시의 형태에서 만들어진다. ‘기쁨과 분노’라는 주제의 불분명함 여부를 떠나서, 두 번째 파빌리온은 드로잉부터 영상설치까지 다양한 매체를 활용하여 사회/정치적인 이슈들을 서정적이고 시적으로 풀어나가는 작품으로 밀도있게 구성되었다. 얼핏 미국의 60년대 팝송 제목과도 같은 타이틀의 김성환의 작품, Love Before Bond(2017)은 한국과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역사적인 사실을 기반으로 한 허구의 이야기가 담겨있었다. 비선형적인 네러티브가 담긴 영상이지만, dogr과 협업으로 만들어진 음악은 시적인 영상미를 배가시켜 작품의 몰입도를 높였다. Sebastian Diaz Morales의 Suspension(2014-17) 은 느린 속도로 무한히 낙하중인 남성이 등장하는 단조로운 영상이지만, 사실과 허구 사이의 경계를 넘나드는 장면을 교차시켜 몽환적인 공간을 만들어냈다. 두 작품 모두 조명과 바닥, 천장, 관람석 등의 설치물을 통해 2차원의 영상을 관람자의 공간까지 확장시켜 공감각적인 심상을 극대화 시켰다. Kiki Smith의 잉크 드로잉 자화상과 스타킹을 활용한 Semga Nengudi의 추상 조각이어지는 전시장을 돌고 나니, 어느새 하루의 절반이 지나 있었다.

 

7.

일반적으로 관람객은 평균 15~25분 동안 전시장에 체류하고, 그 사이 30~60 여 점의 작품을 관람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한 작품당 평균 관람시간은 9~15초 정도에 불과하다.[5] 반나절의 시간은 20개에 가까운 전시를 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지만, 비엔날레 하나를 온전히 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비엔날레를 관람하는 일은 분명 고된 육체노동에 가깝다.

 

8.

개막일임에도 불구하고 매우 한산했던 Arsenale의 전시장은 ‘지구’, ‘전통’, ‘샤먼’, ‘디오니소스’ 등 나머지 7개의 파빌리온이 전시된 일자형 공간이었다. 전시장을 둘러보며 1967년부터 Kansai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The Play의 Uji강 프로젝트와 Marie Voignier의 픽션과 논픽션을 혼합한 영상작업 앞에서 한참 멈춰섰다. 이 후, 자연을 대상으로 하여 재생의 메시지를 담은 다수의 영상과 사진작품들을 보았고, 도자와 유리, 직물을 소재로 한 대규모의 작품들 사이 사이를 거닐었다. 인터넷 창에 나열된 연관 검색어처럼, 7개의 주제들은 전시장 내에서 하나의 문맥을 형성하지 못한 채 개별적인 이미지로 부유 했다. 작품 하나를 오롯이 집중하기 어려운 공간에서 작품과 작품 간의 연결고리를 찾기란 쉽지 않았고, 어느새 길고 어두운 터널 같은 전시장을 빠져 나가기에만 급급해졌다.

 

9.

유럽을 중심으로 한 비엔날레와 미술행사가 올해 유독 집중되었다. 지난 4월부터 시작한 카셀 도쿠멘타는 ‘아테네로부터 배우기(Learning from Athens)’라는 주제로 유럽의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한 도시와 복지강국으로 이해되는 도시 간의 이해를 도모하고자 했다. 1977년 개최 연도부터 현재까지 뮌스터 조각프로젝트의 예술감독을 맡고 있는 Kasper König은 올 해 전시에서 뮌스터 인근 도시 Marl과의 협업을 꾀하고, Britta Peters와 Marianne Wagner와 함께 큐레이터팀을 구성하여 다양한 형태의 전시와 커뮤니티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여타 비엔날레가 기존의 권위와 전통을 뒤로 하고, 새로운 정체성과 의의를 찾기 위해 실험적으로 전시를 준비했던 것에 반해, 베니스비엔날레는 이렇다 할 시도나 주제 없이 후반으로 갈 수록 맥이 빠져버린 전시를 보여줬다. 자국 이기주의와 빈부격차, 경제 위기, 전쟁, 난민 등의 문제가 극으로 치닫는 오늘의 상황에서 누가 왜, 그리고 무엇을 위해서 ’예술 만세’를 외친다는 것인가. 미술축제에 부응하는 슬로건 이상의 의미를 전시장 내에서 찾기란 어려웠으며, 몇몇 작품들과 국가관 덕분에 최악의 비엔날레는 겨우 면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간간히 마주치는 베니스의 풍경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1] http://theartnewspaper.com/reports/the-path-to-other-dimensions-christine-macel-s-viva-arte-viva/

[2] 57th International Art Exhibition, Viva Arte Viva, La Biennale di Venezia 2017 catalogue, p. 39.

[3]https://www.artsy.net/article/artsy-editorial-venice-biennale-artists-numbers

[4] Pavilion of Artists and Books, Pavilion of Joys and Fears, Pavilion of Common, Pavilion of Earth, Pavilion of Tradition, Pavilion of Shamans, Dionysian of Pavilion, Pavilion of Colors, Pavilion of Time and Infinity

[5] 미술관 전시관람 유형에 관한 연구, 국립현대미술관, 2007, p.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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