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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roducibility of the painting - The return of past memories and senses 

회화의 재현 가능성 - 지나간 기억과 감각의 복귀

Yoonjung Choi, September 14, 2018

Review / Gerhard Richter. Abstraktion, Museum Barberini (06.30~10.21.2018)

로마 시대의 학자인 플라이니(Pliny the Elder, 서기 23~79년)는 회화의 사실성을 둘러싼 고대 그리스 화가 제욱시스(Zeuxis)와 파라시오스(Parrhasios)의 일화를 기록했다. 마치 실제 사물이라 착각할 정도로 사실적인 묘사 실력으로 이름나있던 이 둘은 서로의 우위를 가리기 위해 내기를 하기로 했다. 결전의 날 제욱시스가 먼저 자신의 그림을 덮고 있던 천을 들추었더니, 포도 덩굴이 어찌나 사실처럼 그려져 있었던지 새가 날아와 그 위에 앉으려 했다고 한다. 승리를 확신한 제욱시스는 의기양양해져서 파라시오스에게 천을 들추어 그림을 보여달라고 했다. 그런데 그 천은 들출 수 없는 것이었다. 프라시오스가 묘사한 것은 천 자체였기 때문이다. 프라시오스의 작업처럼 게르하르트 리히터(Gerhard Richter, 1932~)의 <장막(밝은)(Vorhang (hell)) [56])>(1965)>[도판1]은 환영을 불러일으킨다. 리히터의 작업에서는 파라시오스가 묘사했던 자연 그대로의 사실성은 없다. 장막의 주름에서 생겨나는 음영은 어렴풋하게만 표현되어 있다. 장막이 바람에 흔들리는 순간을 스치듯 본 것처럼 리히터의 <장막>은 희뿌옇게 묘사되어있다. 그러나 사실적인 묘사의 기준을 달리한다면 리히터의 작업은 파라시오스와는 다른 방식으로 사실성을 취하고 있다. 리히터의 작업은 커튼 그 자체의 환영이 아니라, 인간의 시지각을 통해 가능한 혹은 이제는 인간의 시지각 경험을 대신한 카메라가 포착하는 순간의 환영을 묘사했기 때문이다. 폭과 길이가 각 약 2미터 정도의 이 작업 앞에 서면 장막이라는 대상을 스쳐 지나가듯 보았지만, 대상의 이미지는 영원의 순간으로 박제되어 있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는다. 리히터의 <장막>은 명확히 지각하지 못하는 어렴풋한 기억 혹은 감각의 환영을 복귀시킨다.

        바베리니 미술관(Museum Barberini)에서 진행 중인 <게르하르트 리히터. 추상(Gerhard Richter. Abstraktion)>에는 1960년대 리히터 작품 활동 초기부터 2017년 최근작까지 이르는 90여 점의 작품이 시기별 리히터의 작업 특징에 따라 나뉘어 전시되어있다. 큰 규모의 전시이지만 여기에 구체적인 형체를 파악할 수 있는 구상을 지닌 작업은 앞서 언급한 장막 시리즈 두 점뿐이다. 나머지 작업들은 그 어떤 물체도 직접적으로 지시하지 않는다. 그러나 모든 작업들에서 <장막>과 마찬가지로 회화가 무엇을 어떻게 재현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떠올려 볼 수 있다.

 

이분법의 역사에서 리히터가 택한 길

 

이번 바베리니 미술관 전시가 흥미로운 이유는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작업 세계를 크게 양분하는 형상회화와 추상회화 중에 후자에만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리히터는 본격적으로 작업을 시작한 1960년대부터 실제 대상물이 아니라 가족 앨범, 광고, 기사 등 일상생활에서 볼 수 있는 사진 이미지를 그리는 사진회화(Fotomalerei) 방식을 채택해 흐릿하지만, 카메라 피사체의 형체가 남아있는 형상회화를 그렸다. 리히터의 작업에서 형상회화와 추상회화는 언뜻 보기에는 구상과 추상이라는 미술사의 오래된 이분법과 맞아떨어지는 듯해 보인다. 그러나 리히터의 작업에서 이 둘은 완전히 분리될 수 없다. 물감이 마르기 전에 붓으로 윤곽선을 흐리는 블러링(Blurring) 기법으로 인해 재현하려는 대상이 불명확해지고, 극단적으로 줌업 한 사진 이미지를 사용하는 경우에는 사진 속 피사체를 분별하는 것이 아예 불가능해진다. 반대로 지시대상이 없는 추상에서 보는 이의 연상을 통해 무언가를 읽어낼 수 있는 경우도 있다. 위의 두 반대 상황이 전시된 작품들에서 어떻게 나타나나 확인하기 전에 리히터가 구상과 추상 사이를 오가는 길을 택하게 된 배경을 살펴보자.

        리히터의 생애를 특징 짓는 역사적 배경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 분단 시기일 것이다. 동독에서 태어나 드레스덴에서 사회주의 리얼리즘 양식 미술 교육을 받은 리히터는 1961년 서독 뒤셀도르프로 넘어가 미국에서 유입된 새로운 미술 운동들을 접하게 된다. 이 시기 잭슨 폴록의 추상표현주의를 필두로 매체의 순수성을 주장하는 모더니즘은 이미 끝나가고 있었다. 회화가 수행했던 대상의 사실적 묘사라는 기능을 사진이 대신하기 시작한 이후 그렇다면 회화는 무엇을 어떻게 재현할 수 있을지를 고민했던 모더니즘이 끝나게 된 것이다. 저물어가는 추상표현주의 대신 새롭게 떠오르는 양식은 만화나 사진 등 대중매체 이미지를 사용하는 팝아트였다.

        리히터가 시도한 사진회화는 정치적 상황과 미술사 속에서 그가 느꼈던 이분법의 구분을 흐릴 수 있는 방법이었다. 먼저 정치적 측면에서 동서독 이데올로기 갈등을 경험했던 리히터는 예술의 정치성을 피하려 했다. 사진 이미지의 모사는 주관적 해석을 배제하고 객관적인 관찰자의 시선을 취하려는 시도였다. 미술사의 측면에서는 모더니즘이 갖고 있던 회화가 무엇을 어떻게 재현할 수 있느냐라는 질문을 동독 사회주의 리얼리즘 기법과 팝아트가 보여준 대중매체 이미지 차용을 결합한 방식으로 풀어갈 수 있는 해결책이 되었다.

회화 매체 탐구

 

주관성의 배제는 정치적 배경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였다. 리히터는 대상을 어떻게 볼 것인가의 문제, 즉 대상에 대한 해석을 배제하기 위해서도 재현할 대상의 이미지가 이미 제시된 사진회화나 대상이 없는 추상회화를 그렸다.특히 이번 바베르니 미술관의 전시는 추상회화에 집중하기 때문에 리히터의 작업을 지시 대상의 재현 없이 회화 자체를 고민하는 매체 탐구 측면으로 접근할 수 있다.

        순수한 매체로 다가가기 위해 리히터는 우연성의 방법들을 취한다. 먼저 대표적인 예가 페인트 샘플에서 흔히 보이는 색조표(color chart)이다.[도판2] 60년대 리히터 초기 작품세계에서 보이는 색조표 시리즈는 색상을 무작위로 골라 제시한다. 이 시도는 추상표현주의와 마찬가지로 색상을 사물과의 연관으로부터 떼어내어 색상 간의 위계를 없애려는 시도이다. 그러나 추상표현주의에서는 작가의 표현이 강조되었던 반면, 리히터는 우연적으로 선택된 색상을 최대한 중립적으로 칠했다. 리히터가 우연성을 자아내는 또 다른 방법은 스퀴지(squeegee, 고무 밀대)와 스패튤라(Spatula, 주걱)의 사용이다.[도판3] 그는 1980년대 중반부터 이 두 도구를 사용하면서 추상회화 작업을 본격적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물감이 마르기 전에 고무롤러를 사용해 물감이 번지게끔 함으로써 색조표 시리즈에서처럼 색상 간의 위계를 없앴을 뿐만 아니라, 나아가 형태의 위계 또한 무너트렸다. 물감이 굳지 않은 상태에서 칠하며 긁기를 거듭하여 우연적으로 생겨난 이미지에서는 회화가 지닌 물질성이 눈에 들어온다.

        지시 대상을 없애고 회화라는 매체에 질문을 던지는 시도는 사진회화에서도 볼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 볼 수 있는 리히터의 사진회화는 어렴풋하지만 피사체가 남아있는 작업이 아니라 그 어떠한 형체도 남기지 않은 추상작업이다. 리히터는 사진 이미지를 극도로 클로즈업하여 대상을 낯선 것으로 만든다. 이를 통해 결과적으로는 우연성의 방법과 마찬가지로 회화를 지시 대상의 재현으로부터 해방시킨다. 사진 이미지를 모사하지만, 그 상을 알아볼 수 없는 것으로 탈바꿈시킨다. <단면(Ausshnitt)> 시리즈는 팔레트 위에 남은 물감 잔여물을 사진으로 찍은 후 캔버스 위에서 확대해 그린 작품이다[도판4]. 리히터 사진회화의 특징인 블러링 처리 때문에 명확한 윤곽 없이 희뿌옇게 보일뿐더러 극단적인 확대로 인해 명확한 대상물을 읽어낼 수 없다. 이 작업에 남아있는 것은 색채로 가득 찬 표면이다.

 

현재의 투영을 통한 지나간 기억 혹은 감각의 복귀

 

지시 대상을 없애고 남은 것은 표면 위 회화라는 매체가 지닌 물질성과 평면성이다. 그러나 리히터가 회화가 형식주의가 시도한 폐쇄적 자기 탐구를 반복하는 것은 아니다. 리히터의 작업이 구상과 추상의 경계 사이를 허무는 것처럼, 리히터의 추상 작업에서 회화라는 매체의 탐구는 캔버스 안과 밖을 오가는 결과를 낳는다. 캔버스 위에는 지시 대상 없는 물질적 속성만이 남아있으나, 그 흔적은 보는 이의 연상 작용을 거쳐 지나간 기억과 감각을 지금의 순간으로 복귀시키고 있다.

        <단면(Ausshnitt)> 시리즈가 물감이라는 재현물에서 시작했지만 극단적 확대와 블러링을 통해 지시대상을 잃어버린 것과는 달리, 리히터의 작업 중에는 순수한 추상에서 시작했지만 자연 풍경을 연상시키는 작업들이 있다. 하늘색 배경과 그 아래 펼쳐지는 회색 혹은 녹색 계통의 붓자국은 우리의 관습적인 시지각 경험을 일깨워 추상회화를 하나의 풍경화로 받아들이게끔 한다. <추상 회화(Abstraktes Bild) [551-1]>(1984)[도판5]은 잔잔한 하늘 아래 휘몰아치는 파도를 아니면 거친 돌들로 이루어진 지대를 떠올리게 한다. 떠올려지는 풍경은 보는 이마다 달라질 수 있다. 중요한 건 상부의 매끈한 표면과 하단의 거친 붓터치의 대조가 우리에게 익숙한 지평선의 풍경에 대한 감각을 되살린다는 것이다.

        리히터의 추상회화는 풍경 등의 한정된 주제를 넘어 구체적이지 않은 기억과 감각을 연상시킨다. 앞서 설명했듯 리히터는 회화를 지시대상의 재현이라는 의무에서 자유롭게 하고 회화의 물질성을 탐구하기 위해 스퀴즈와 스패튤라을 사용했다. 스퀴즈로 밀어내진 물감들은 스쳐 지나감의 흔적을 남기고, 스패튤라로 그 흔적을 긁어내면 아래에 있던 여러 층위가 드러난다[도판6]. 리히터가 이루어낸 회화의 물질성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명확하게 기억하지 않았던 혹은 할 수 없었던 과거의 기억과 감각을 캔버스 위에 투영하게 한다.

        발터 벤야민은 <역사철학테제>에서 진보라는 가상을 품은 연속성의 역사관을 비판한다. 역사는 인과관계로 연결된 직선이 아니라, 동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는 과거의 사건들이 현재의 위치에서 구성된 것이다. 무엇보다 벤야민에게 역사는 이미지로 읽힌다. 그에 따르면 지나간 과거의 것을 역사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과거가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그대로 상기하는 것이 아니라, 섬광처럼 예기치 않게 나타난 과거의 이미지를 스쳐 붙잡아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리히터가 추상회화에서 겹겹이 칠한 색들은 이전 색들과의 그 어떤 연관성을 갖지 않는다. 분절된 레이어들을 스패튤러로 긁어내면, 쌓여있던 과거가 스패튤러를 쥐는 힘의 강도에 따른 우연적인 이미지로 드러난다. 스퀴즈가 물감을 밀고 지나가 만들어진 흔적과 스패튤러가 파낸 흔적들은 명확한 형체를 지니지 않은 순수한 추상이지만, 무언가가 지나갔고 남아있다는 물질성이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스쳐 지나갔던 과거의 이미지를 불현듯 떠올려보게 한다.

        리히터의 작업 중 유리판을 이용한 설치 작업에서는 과거 이미지를 마주하는 현재의 자리가 더욱 강조된다. <7개의 유리판들(카드로 만들어진 집)(7 Scheiben(Kartenhaus)) [932]>(2013)[도판7]은 다른 작업들이 전형적인 화이트큐브 안에 전시된 것과 달리 창문이 많이 달린 공간에 놓여있다. 유리판에는 작품을 바라보는 관람자, 같은 방 안에 전시된 다른 작품들 그리고 창밖의 풍경이 비친다. 그러나 유리판들이 겹겹이 겹쳐졌기에 그 위에 비치는 상들은 단절되고 중첩되어, 추상 작업과 마찬가지로 명확한 상을 파악하기란 어렵다. 중요한 건 벤야민의 역사테제와 마찬가지로 스쳐 지나가는 이미지 속에서 무언가를 읽어낼 수 있게 하는 현재 상황의 투영이다.

        분단된 독일의 이데올로기 갈등을 겪은 리히터는 예술에서 정치성을 배제하려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그의 작업은 정말 사회와는 분리된 것일까? 유대인 수용소에서 나타난 인간의 잔혹함을 독일 사회는 한동안 외면했다. 인간의 이성을 초월하는 잔혹함은 많은 사람들에게 상상할 수 없는 것, 표현할 수 없는 것, 재현할 수 없는 것으로 남았었다. 이번 전시에는 선보이지 않았지만 리히터는 나치 장교로 일했던 자신의 삼촌이나 유대인 수용소 등 지나간 역사를 사진회화 작업으로 남겼다. 전자의 경우에는 흐릿한 형체가 남아있는 구상회화였지만, 후자의 경우에는 제목에서만 비르케나우 수용소라는 구체적인 지표를 읽어낼 수 있다. 그러나 작품을 보는 이는 캔버스 위에 남겨진 흔적으로부터 지극히 참혹하기에 명확하게 표현할 수 없었던 역사를 제 각자 떠올려볼 수 있다. 리히터는 회화라는 매체를 탐구하기 위해 작가의 주관성과 지시 대상물을 소거했다. 그 결과는 아무런 지표도 가리키지 않는 순수한 회화 캔버스가 아니라, 회화의 새로운 재현 가능성이다. 리히터의 추상회화에서 회화가 재현하는 것은 인간이 명확하게 포착할 수 없었던 그래서 우리를 스쳐 지나갔던 과거의 기억이다. 파라시오스가 자랑했던 사실적 묘사 능력은 이미 기계의 눈이 차지한 지 한참이다. 나아가 우리가 사진에 의존해서만 지난 일을 상기할 수 있는 것처럼, 사진이 지닌 사실적 재현 능력은 인간의 기억을 결정하기까지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리히터는 회화가 무엇을 재현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마들렌 한입 문 순간 퍼져나오는 유년 시절처럼 개인의 기억일 수도 있겠고 참혹하기에 직시할 수 없었던 재난이나 참사 같은 공동체의 기억일 수도 있는 과거의 흐릿한 역사를 리히터의 추상 작업은 현재의 시간으로 가져온다. 그렇게 해서 리히터의 추상회화가 재현하는 환영은 지나간 기억과 감각이다.

 

* 본 글은 월간 미술세계 2018년 9월호에 수록된 원고의 미교열본입니다.

D3

[도판1]

좌    Gerhard Richter, <Vorhang III (hell) (56)>(1965), 캔버스 위 유화, 199,5 x 189,5cm, Staatliche Museen zu Berlin, Nationalgalerie

우    Gerhard Richter, <Vorhang [58-1]>(1964), 캔버스 위 유화, 65 x 47 cm, Block Collection, Berlin

[도판3]

좌    Gerhard Richter, <Abstraktes Bild [780-3]>(1992), 캔버스 위 유화, 260 x 200 cm, Privatsammlung

우    Gerhard Richter, <Abstraktes Bild [776-3]>(1992), 캔버스 위 유화, 92 x 82 cm, Privatsammlung

[도판2]

Gerhard Richter, <192 Farben [136]>(1966), 캔버스 위 유화, 200 x 150 cm, Hamburger Kunsthalle, Dauerleihgabe der Sammlung Gerhard und Elisabeth Sohst,

© Gerhard Richter 2018(29062018)

[도판4]

Gerhard Richter, <Ausschnitt (Makart) [288]>(1971), 캔버스 위 유화, 200 x 200 cm, Museum Küppersmühle für Moderne Kunst Duisburg, Sammlung Ströher

© Gerhard Richter 2018 (29062018)

[도판5]

Gerhard Richter, <Abstraktes Bild [551-1]>(1984), 캔버스 위 유화, 43 x 60 cm, Privatsammlung, © Gerhard Richter 2018 (29062018)

[도판6]

Gerhard Richter, <Abstraktes Bild [889-10]>(2004), 캔버스 위 유화, 200 x 200 cm, Städtische Galerie im Lenbachhaus und Kunstbau, München, Sammlung KiCo 일부확대

[도판7]

Gerhard Richter, <7 Scheiben (Kartenhaus) [932]>(2013), Privatsammlung